"이 나이에 무슨 애정 표현이야." 많은 중년 부부가 쑥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손을 잡거나, 고맙다고 말하거나,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일이 언제부턴가 쑥스럽고 새삼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자연스럽던 것들이, 수십 년을 함께 살고 나니 오히려 더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죠. 그런데 애정 표현이 사라진 자리에는 조용히 거리감이 들어섭니다. 서로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데면데면해지고, 한집에 살면서도 남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거리감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넓어집니다. 오늘은 나이가 들수록 부부 사이에서 애정 표현이 사라지는 이유와, 어색하지 않게 그것을 다시 시작하는 법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왜 나이 들수록 표현이 사라질까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함입니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상대의 존재가 공기처럼 당연해집니다. 당연한 것에는 굳이 표현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죠.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이 쌓이면서 표현은 점점 줄어듭니다. 두 번째는 쑥스러움입니다. 젊을 때와 달리 애정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이 나이에 낯간지럽게"라는 마음이 앞섭니다. 특히 표현에 서툰 세대일수록 이 벽이 높습니다. 세 번째는 상처의 누적입니다. 오래 살며 서운했던 일들이 쌓이면, 먼저 다정하게 다가가는 것이 왠지 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있어도 표현을 아끼게 됩니다. 특히 우리 세대의 남성들은 애정을 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 적이 거의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묵묵히 가족을 부양하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해온 경우가 많죠. 그러니 표현이 서툰 배우자를 두고 "마음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그 사람 나름의 방식을 먼저 알아봐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 이유들이 겹치면서, 부부는 서로를 아끼면서도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상태에 익숙해집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독립하고 부부만 남으면 이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동안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바빠서 둘 사이의 서먹함이 가려져 있었는데, 이제 그 완충지대가 사라지면서 서로에게 표현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도 옅어진다
"표현 안 해도 마음은 그대로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옅어집니다. 고마움을 말로 하지 않으면 고마움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무뎌지고, 애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애정의 온도도 조금씩 내려갑니다. 반대로 작은 표현이라도 자주 하면, 그 표현이 다시 감정을 데웁니다. 마음이 있어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표현하기 때문에 마음이 유지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정 표현은 마음이 충분히 차오를 때를 기다렸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작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맞습니다. 표현이 마음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점은 더 중요해집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크고 작은 병치레가 시작되고, 주변에서 아픈 소식이 들려오는 시기일수록,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주는 위안이 훨씬 큽니다. 애정 표현은 젊은 부부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 든 부부에게 더 필요한 것입니다.
거창할 필요 없는, 작은 시작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랑해"라고 말하거나 큰 선물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부담스러운 시도는 서로를 더 어색하게 만듭니다. 중년 부부의 애정 표현은 작고 일상적일수록 자연스럽습니다. 아침에 "잘 잤어?"라고 먼저 묻는 것, 상대가 해준 일에 "고마워"라고 짧게 말하는 것, 지나가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것, 함께 걸을 때 손을 한 번 잡아보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관계의 온도를 만듭니다. 말이 쑥스럽다면 행동으로 시작해도 됩니다. 좋아하는 반찬을 말없이 챙겨주는 것도, 상대의 물컵을 먼저 채워주는 것도 훌륭한 애정 표현입니다. 오래 함께 산 부부에게는 이런 표현이 오히려 더 큰 힘을 갖습니다. 수십 년을 봐온 사이라 상대의 작은 변화 하나도 금방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이 건넨 "고마워" 한마디는, 다정한 사람의 열 마디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꾸준함입니다.
어색함을 넘기는 법
처음 다시 시작할 때는 분명 어색합니다. 갑자기 다정해진 나를 상대가 이상하게 볼까 봐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잠깐입니다. 며칠만 지나면 서로 익숙해지고, 상대도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상대가 처음에 시큰둥하게 반응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십 년간 없던 표현이 갑자기 생겼으니 어리둥절한 것이지, 싫어서가 아닙니다. 꾸준히 계속하면 대개 상대도 마음을 열고 같은 방식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표현은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먼저 시작하면, 얼어 있던 다른 한 사람도 서서히 녹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상대에게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시작하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당신이 먼저 다정하게 하면 나도 하겠다"고 서로 기다리기만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물꼬를 터야 하고, 그 사람이 내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먼저 표현하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더 아끼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남은 시간을 데면데면하게 보낼지, 다시 다정하게 보낼지는 오늘의 작은 한마디에서 갈립니다. 오늘 저녁, 거창한 것 말고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말 한마디로 가만히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와 생활 속 관계 회복 관점을 정리한 것으로, 전문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이 오래 이어지는 경우에는 전문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면책사항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