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씨(가명)와 남편은 얼마 전, 오랜 친구의 문병을 다녀왔다. 친구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고, 정작 병실 밖 그 자리에서는 가족들 사이에 언성이 오갔다. 연명치료를 계속할지 말지를 두고, 자식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갈린 것이었다. "그만 편하게 보내드리자"는 쪽과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라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 정작 당사자인 친구는 의식이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원을 나오는 길, 영자 씨와 남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예전에도 지인들의 부고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번처럼 직접 그 갈등의 현장을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자식들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영자 씨는 남 일 같지 않아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도 언젠가 저런 순간이 오겠지."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자 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어느새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조차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져서, 그동안은 서로 이런 이야기를 피해왔다.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 본 광경이, 더는 미룰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들의 뜻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언젠가 자식들이 저 자리에서 똑같이 다투게 될지도 몰랐다.
며칠 뒤 영자 씨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열아홉 살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고, 최근에는 온라인으로도 등록할 수 있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같은 연명 의료를 받을지 말지를, 건강할 때 미리 정해두는 문서였다. 비용도 들지 않았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왠지 상대에게 불길한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먼저 죽을 준비를 하자는 거냐"고 서운하게 받아들일까 봐 걱정도 됐다. 최근 정부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춰, 그동안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야만 가능했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게 절차를 정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문제를 미리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영자 씨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우리도 이런 거 한번 써두는 게 어떨까." 남편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면 미리 정해두는 게 낫지."
두 사람은 주말에 함께 보건소를 찾았다. 상담사는 두 사람에게 이런 대화를 미리 나누는 부부가 최근 들어 꽤 늘었다고 귀띔해주었다. 예전에는 죽음 얘기를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렸는데, 요즘은 오히려 미리 준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했다. 상담을 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처음으로 자세히 나눴다. 영자 씨는 마지막까지 무리한 치료보다는 편안하게 보내지고 싶다고 했고, 남편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대화가 길어진 부분도 있었다. 장례 방식이나 부고를 알릴 범위 같은, 평소라면 절대 나누지 않았을 이야기들이었다. 남편은 조용히 가족끼리만 치르길 원했고, 영자 씨는 평생 알고 지낸 지인들에게는 알리고 싶어 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진지한 이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새삼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됐다. 서로 삼십 년 넘게 살아왔으니 이런 것쯤은 당연히 비슷하게 생각할 거라 여겼는데,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니 의외의 지점에서 생각이 갈리는 게 신기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히 그렇겠지" 하고 넘겨짚으며 살아왔는지 새삼 느껴졌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함께 저녁 산책을 나섰다. 딱히 특별한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그 침묵조차 예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자 씨는 마음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죽음을 이야기했는데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미리 얘기해두니까, 이제 걱정 하나는 던 것 같네." 두 사람은 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그저 짐작만 하고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남편은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 손끝에서, 영자 씨는 오랜만에 말로 다 하지 못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이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한 서로의 마음은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했는데도 오히려 서로에게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평소라면 절대 나누지 않았을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두 사람 사이에 새로운 종류의 신뢰를 만든 것 같았다.
이 대화가 있고 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졌다. 별것 아닌 하루 일과를 나눌 때도, 예전보다 더 귀 기울여 듣게 됐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매년 한 번씩, 부부의 날 즈음에 이 의향서 내용을 함께 점검해보기로 했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자식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두기로 했다. 나중에 그날 병원에서 봤던 것 같은 다툼이 벌어지지 않도록, 부모의 뜻이 어디에 어떻게 정리되어 있는지 미리 일러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 처음엔 그렇게 두렵고 낯설었지만, 막상 해보니 그것은 오히려 서로를 향한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언젠가 올 그 순간에, 남은 사람이 괜한 죄책감이나 혼란 없이 상대의 뜻을 존중해줄 수 있도록, 미리 마음을 나눠두는 일이었다. 영자 씨와 남편은 그 대화를 통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보다 먼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하나 더 얻은 셈이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무엇인가요?
19세 이상 성인이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연명 의료를 받을지 여부를 건강할 때 미리 문서로 정해두는 제도로, 비용 없이 작성할 수 있습니다.
Q. 부부가 이런 대화를 미리 나누면 왜 도움이 되나요?
평소 나누지 않던 죽음과 장례에 대한 생각을 미리 확인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깊어지고, 훗날 자녀들 사이의 갈등도 줄일 수 있습니다.
Q.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디서 작성할 수 있나요?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이나 보건소를 방문해 작성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온라인 작성 절차도 마련되고 있습니다. 작성 후에도 언제든지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법률·의료 자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 대한 정확한 안내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www.lst.go.kr)이나 가까운 보건소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면책사항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