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간소화, 둘만의 명절을 보낸 중년 부부 이야기

 



정희 씨(가명)는 올해 처음으로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가지 않기로 남편과 함께 정했다. 결혼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명절이면 늘 새벽부터 전을 부치고, 차례 음식을 나르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재작년 시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시고, 형님 댁이 제사를 모시겠다고 하면서, 정희 씨 부부는 처음으로 명절에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졌다. 처음엔 그게 서운했다. 명절인데 갈 곳이 없다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정작 자신의 명절은 언제나 뒷전이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서운함과 동시에, 이상하게도 아주 작은 해방감 같은 것도 함께 찾아왔다. 그 두 감정이 동시에 드는 게 스스로도 낯설었다.

며칠을 고민했다. 이번 명절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갈까, 아니면 뭐라도 해볼까. 남편도 정희 씨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끼리 뭐 해볼까." 정희 씨는 처음엔 그 말이 낯설었다. 명절은 늘 일하는 날이었지, 뭘 해보는 날이 아니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이 처음으로 명절을 온전히 둘만의 시간으로 써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요즘은 이런 집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차례를 아예 안 지내거나, 음식을 사서 간소하게 지내는 집이 많아졌다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는 알았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막상 명절 아침이 되자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라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전을 부치고 있어야 할 시간에, 정희 씨는 침대에서 늦잠을 잤다. 지난 28년 동안 명절 아침은 늘 알람 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눈을 뜨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가 전 재료를 다듬고, 국을 끓이고, 상을 차리는 일들이 몸에 밴 순서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오늘은 그 익숙한 순서가 통째로 사라진 아침이었다. 눈을 뜨니 남편이 먼저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오늘 뭐 할까." 남편이 물었다. 정희 씨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 질문에 답해본 지가 너무 오래됐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늘 명절은 정해진 일들로 꽉 차 있었고,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다. 시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상상도 못 했던 풍경이었다. 명절 아침에 이렇게 아무 할 일 없이 커피 냄새만 맡고 있다는 게, 죄스러우면서도 묘하게 평온했다.

두 사람은 결국 근처 산책로를 걸었다. 평소 명절이면 다니지 않던 길이었다. 사람도 적고, 날씨도 선선했다. 남편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신혼 때 생각난다." 정희 씨도 그랬다. 결혼하고 몇 년은 명절에 시댁 일이 많지 않아 둘이 나들이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벌써 이십몇 년 전 일이었다. 신혼 초, 아직 아이도 없고 시댁 행사도 많지 않던 그 시절, 명절이면 근교로 나가 온천을 가거나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시부모님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그런 시간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명절이 다시 이렇게 두 사람만의 시간이 될 줄은, 정희 씨도 남편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명절은 온전히 '일'이었지, 이렇게 둘이서 걷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아니었다. 걷다 보니 정희 씨는 문득, 그동안 명절마다 느꼈던 그 피로와 서러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걷는 내내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부쩍 무릎이 안 좋다는 이야기, 은퇴하면 뭘 하고 싶은지, 자식들 걱정까지.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늘 밀려나 있던 아주 평범한 부부의 대화였다.

물론 마음 한구석이 완전히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래도 되나" 하는 죄책감이 문득문득 올라왔다. 명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걸까, 어른들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그래도 우리끼리 이렇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듯 말했다. 명절 저녁, 두 사람은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았을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전 부치는 냄새 대신 매콤한 떡볶이 냄새가 집 안을 채웠다. 이상하게 그게 웃겼다. 명절인데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몸이 그동안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어디선가 요즘은 명절을 아예 안 지내거나 대폭 간소화하는 집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떠올랐다.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데, 정작 자기 자신이 그 변화를 이렇게 직접 겪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웠을 때, 정희 씨는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보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든 명절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식들이 크면 또 다른 가족 행사가 생길 테고, 양가 형제들과의 관계도 계속 신경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게 떠맡아왔던 일들을 내려놓고, 두 사람 자신을 위한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뜻깊었다. 명절의 의미가 꼭 정해진 형식으로만 지켜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정희 씨는 그 하루를 통해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명절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부부라면, 한 번쯤은 이렇게 자신들만의 명절을 상상해봐도 좋을 것이다. 모두가 정희 씨 부부처럼 갈 곳이 없어져서가 아니라도, 가족과 상의해서 하루 정도는 온전히 둘만의 시간으로 남겨두는 것. 그것만으로도 명절이 주는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명절 간소화란 무엇인가요?
차례를 대폭 줄이거나 아예 지내지 않고, 가족과 상의해 부담을 최소화한 형태로 명절을 보내는 최근의 변화된 명절 문화를 말합니다.

Q. 왜 명절을 간소화하는 부부가 늘고 있나요?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명절증후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명절 부담을 줄이고 부부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습니다.

Q. 명절을 둘만 보내는 것이 괜찮을까요?
가족과 미리 상의하고 합의된 방식이라면, 부부가 명절 하루를 온전히 자신들을 위한 시간으로 쓰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전문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가족 관계의 어려움이 오래 이어지는 경우에는 전문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 면책사항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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